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27

도깨비와 엉덩이의 세계

민승기 교수

도깨비와 산책을 ‘두통으로 오는 이웃’을 위해 ‘식탁’을 차리고, '재채기하는 도깨비’와 산책’하는, 거의 모든 세계’에 시인은 ‘있다’.

            어떻게 사나요?

           도깨비처럼 살지요

           도깨비처럼 사는 게 무엇인가요? 이렇게 가끔 나타나는 거지요

                一 무아하고 전지전능한」에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의 나타남. 나타남은 사라짐을 전제로 한다. 사라지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도깨비는 세계 속에 있지만 없는 ‘잉여’이다 세계 속에 더해져 세계가 결코 온전한 전체가 될 수 없음을 고지하는 ‘틈’. 온전한 세계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세계는 ‘거의 모든 세계’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외치는 ‘리빙 데드’.（“사실 곰은 없었다 자꾸자꾸 곰 생각 올 한다”「리빙 데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아니 죽음을 살아가는 도깨비는 그러나 친 밀하고 낯선 이웃으로 온다.

           우리는,

           배꼽의 이웃

           두통이 올 때마다

           몸이 삼차원임을 알듯이

           네가 올 때마다 너, 두통처럼.

                      一「선량한 이웃」에서

도깨비는 배꼽이란 상처로 이미 내 속에 들어와 있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꿈의 배꼽이 꿈의 요소들로 환원될 수 없는 공백이듯, 이웃이란 배꼽은 나를 구성하는 중심인 동 시에 나를 능가하는 타자의 흔적, 상처이다. 도깨비는 틈을 내는 그러나 나를 （틈으로） 존재하게 하는 두통으로 온다 ‘나는 （도깨비를） 앓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도깨비와 만남（상처）이 우리를 가능하게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기원적 틈을 억압하거나 봉쇄하려 한다.

           우리는 앙상한 말들로

           （간결한 발걸음）

           우리는, 한다

           오, 친애하는 너에게

                    —「선량한 아웃」에서

   우리는 도깨비를 쫓아내기 위해 모든 말들을 동원해 그 것을 규정하고 지배하려 하지만 남는 것은 항상 앙상한 말 뿐이다. 도깨비는 언어로 재현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고 우리는 그것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뿐이다. 도깨비에게 말 걸기. “오 친애하는 너에게.” 이미 배꼽으로 들어와 있지만, 인사라는 수행적 행위（“우리는, 한다”) 속에서 비로소 오게 되는 도깨비(의 세계). 언어는 도깨비라는 이웃을 향해 열려 있을 때에만, 도깨비라는 상처를 자신 안에 기입할 때 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도깨비에게 말 걸기 위해 상저에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저녁 식탁을 차린다.

           어떻게 사나요?

           가슴을 베어 내고 살지요

           가슴을 베어 내는 건 무엇인가요?

           저녁 식탁을 차리는 일이지요

                          一「우아하고 전지전능한」에서

   저녁 식탁을 차리는 일은 그러나 가슴을 베어 내는 행위이다. 가슴은 다른 것으로 번역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단독적(smgular)인 것이다. 데리다식으로 말하자면 시는 무엇보다도 단독적인 가슴이다. 그것은 도깨비처럼 “하나의 개념도 하나의 대상”도 아니다. 시는 “시학(poetics)의 도서관이 모두 타 버렸을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잉여물이 며 시 일반으로 모아질 수 있는 시가(poetry)도 아니다. 시학이나 시가로 환원될 수 없는 (몇 편의) 시가 있을 뿐이다(「시」,297) 데리다는 보편적 개념이나 특수한 내용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독적인 시를 시적인(poetic) 것과 구분하여 “시다운”(시 한수의, poematic) 것이라 말한다.(「시」,29) ….

 [ 출처 : 아가씨와 빵(심민아 시집) 中에.]

책소개

201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심민아(홍익대 미학과) 시인의 첫 시집 『아가씨와 빵』이 ‘민음의 시’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아가씨’라는 호칭이 불려 온 맥락을 거부하며 ‘아가씨’의 자리를 새로 쓴다. 시인이 그리는 아가씨는 낭만적 사랑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아가씨도,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말괄량이도 아니다. 묵직한 빵을 한 손에 든 노동하는 아가씨다. 도시에서 마주하는 삶의 누추를 꾸밈없이 바라보며 “산 것 특유의 구린내가 나는” 일상을 성실히 가꾸어 나가는 아가씨. 그는 일상의 어려움을 초식 동물의 부드러움으로 무찌르고, 삶의 부조리에 식물의 싱그러움으로 투쟁한다. 그의 스텝은 절룩일 때조차 씩씩한 모습이다. 이 아가씨-시인은 “우울한 사람들이 모여 차 한 솥”을 나눠 먹자고, 함께 “깨지지 않는 밤”을 보내 보자고 손을 내민다. 노동하는 아가씨에게, 세상의 모든 ‘휴먼 빙’들에게..

[출처: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638891?scode=032&OzSrank=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