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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들뢰즈와 스피노자: 무한의 사유 - 박기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1.16 들뢰즈와 스피노자: 무한의 사유 박기순 1. 들뢰즈의 철학에서 스피노자가 중요한 이론적 준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출간한 두 권의 스피노자 연구서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저작들 곳곳에서도 스피노자를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철학자들의 군주", "철학자들의 그리스도",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철학자다운 철학자, 말하자면 가장 순수한 철학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비철학자들에게 말을 걸고, 가장 많이 강렬한 비철학적 이해를 요청하는 철학자”, “나의 가슴 안에 있는 철학자”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들뢰즈가 스피노자 철학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본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스피노자 철학의 주석가로서의 들뢰즈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나 󰡔스피노자. 실천철학󰡕에서 들뢰즈는 프랑스의 엄격한 철학사적 연구 전통에 충실한 주석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에게 주석(le commentaire)은, 적어도 들뢰즈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주석은 우리가 통속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주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사적 실천으로 이해되는 주석은 연구 대상으로서의 한 철학체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즉 한 철학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ce qu'il a voulu dire)를 그의 텍스트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주석의 제일 덕목인 정확함(la justesse)은 대상과 해석 사이의 일치를 전제한다. 즉 해석은 가능한 한에서, 주어진 텍스트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정확하게 한 철학자의 사상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릇된 해석(l'interprétation fausse)과 올바른 해석(l'interprétation vraie)을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주석은 텍스트의 진리(la vérité)를 전제한다. 한 철학체계는 이미 완결된 구조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가능한 한에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때 주석적 이해는 이미 주어져 있는 전통적 개념의 렌즈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한에서 환원적(réductive)이다. 그러나 들뢰즈에게 주석은, 그의 용어로 말하자면, 한 철학자와의 만남(la rencontre)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미의 문제이다. 그에게 한 철학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 그것은 이미 결정된 채로 주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남을 통해서 발생하는 어떤 것, 들뢰즈가 의미(le sens)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이 의미는 주어진 텍스트 혹은 사물에 부여하는 외부에서의 한 관점을 뜻하지 않는다. 의미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 자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물 자체의 표현들이다. 요컨대 텍스트-사물은 무한히 많은 의미를 잠재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l'une)가 아니라 다수(le multiple)이며, 있지 않고 발생한다(il n'est pas, mais il devient).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들뢰즈에게 스피노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스피노자는 한 철학자가 아니라 여럿의 철학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무한한 철학자-되기”(Spinoza, le devenir-philosophe infini)이다. 이런 의미에서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을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환경(un milieu), 다양한 ‘스피노자-되기’가 일어나는 환경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에 대한 독해는 스피노자라는 환경 속에 들어가는 것에 다름 아니며, "스피노자를 그 환경을 통해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피노자와 우리의 만남, 즉 “스피노자와 우리”는 “스피노자라는 환경 속에 있는 우리”를 의미한다. 이렇게 스피노자가 하나의 환경이라면,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만남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스피노자이다. 들뢰즈의 스피노자는 그 수많은 스피노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 스피노자는 어떤 의미에서 ‘들뢰즈 안에 있는 스피노자’(Spinoza dans Deleuze) 즉 ‘들뢰즈와의 만남을 통해서 발생하는 스피노자’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스피노자 안에 있는 들뢰즈는 결국 들뢰즈 안에 있는 스피노자와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볼 때, 들뢰즈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철학사가가 아니다. 따라서 들뢰즈의 독해를 그 엄밀성과 정확성의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은 그에게는 부적절한 대우가 될 것이다. 즉 들뢰즈가 스스로를 철학사가로서, 전통적인 의미의 주석가로서 간주하지 않는 곳에서, 그를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들뢰즈 본인이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는 외재적 관점, 판관의 관점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 자신이 실천한 고유한 독해방식에 관계없이, 그의 독해가 하나의 주석으로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그러한 한에서, 그의 스피노자 독해는 또 다른 측면에서 엄격한 주석의 잣대로 검토되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주석에 대한 들뢰즈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고, 따라서 그의 사상이나 철학자들에 대한 해석을 외재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사상을 그 고유한 내적 논리에 따라 즉 내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선행적으로 요청되는 일이다. 스피노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도록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산적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에서 우리는 내재적 방식으로 즉 들뢰즈 자신이 스피노자와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방식에 충실하게 그의 스피노자 독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들뢰즈의 스피노자-되기(le devenir-Spinoza)는 곧바로 들뢰즈의 들뢰즈-되기(le devenir-Deleuze)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들뢰즈에게는 그의 ‘니체-되기’, ‘베르그손-되기’, ‘칸트-되기’, ‘푸르스트-되기’, ‘아르또-되기’ 등의 수많은 ‘-되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스피노자-되기’는 들뢰즈 철학을 구성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 점에서 그것은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들뢰즈의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들뢰즈 철학의 스피노자주의적 표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에게서 나타나는 개념에 부여하고 있는 독특한 운동, 즉 들뢰즈적 운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이 글에서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스피노자를 데카르트에 대립시키면서 드러내고 있는 스피노자 사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근대라고 하는 역사적 시기가 새롭게 만나고 있었던 문제가 무엇이었고, 그것들을 사유하기 위한 두 철학자의 개념적 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 스피노자적 계기가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철학적 환경을 구성하게 되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2. 무한의 문제와 안정성의 형이상학 의심의 여지없이 들뢰즈의 스피노자 해석을 이끌고 있는 것은 표현 개념이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에서 발견한 이 개념은 전통적인 철학의 한 문제, 즉 하나와 여럿(l'Un et le Multiple)의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 이 문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하여 중세 신학적 전통을 거쳐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형이상학의 역사를 지배하였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였다. 플라톤에게서는 이데아와 그것을 분유하고 있는 사물들의 관계의 문제로, 중세에는 신에게 부여된 신의 명칭들(les noms divins)의 문제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차이의 문제, 혹은 하나 없는 다양성 자체의 문제로, 그것은 다양한 문제틀과 접근방식으로 논의되고 정의되어 왔다. 들뢰즈는 이 문제의 역사에서 스피노자적 계기가 갖는 중요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차이의 철학'의 한 구성요소로 삼는다. 스피노자의 철학적 표현주의는, 들뢰즈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과의 비판적 대결 속에서 형성된다. 들뢰즈는 17세기 두 철학자의 이 대립 속에서 철학적 사유의 전형적인 두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각각 들뢰즈가 "독단적 사유 이미지"(l'image dogmatique de la pensée), 사유 이미지로서의 "내재성의 평면"(le plan d'immanence)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독단적 사유 이미지는 ‘고정성의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de la solidité)을 전제한다. 그것은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 안정적인 것을 상정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를 분명한 형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혹은 분명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즉 유한한 것), 다른 것(타자)과 섞이지 않아서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사유는 이렇게 이미 완벽하고 고정된 형태로 주어져 있는 것(le présenté)을 다시 관념의 형태로 드러내는 것(re-présenter)에 있다. 따라서 재현의 대상에서 무한은 제외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대 희랍인들에게 무한(apeiron)은 현실적인 것, 가지적인 것의 영역에서 제외된다. 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잠재적으로만(potentia) 혹은 감각적인 것들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무한을 현실적으로(actu)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근대에 이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지는가? 물론 달라진다. 그러나 들뢰즈가 보기에 본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대립시키고 있는 데카르트에게서는 적어도 그러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근대 철학자들은 이 독단적 사유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스피노자가 예외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세계 안에 무한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그 세계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코이레가 지적하고 있듯이 그것은 코스모스(Cosmos) 즉 경계가 분명한 것들이 서로 구분되면서 동시에 전체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의 파괴이다. 무한의 세계는 중심이 부재한 세계, 근원적인 불투명성(l'opacité)의 세계이다. 그 누구보다도 파스칼(B. Pascal)은 이점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신의 무한성, 그의 전능함에 대한 긍정은 코스모스의 파괴 즉 조각난 세계, 표류하는 세계, 중심이 없는 세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곳에 중심이 있고 울타리가 없는 세계의 긍정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인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부재하는 중심을 찾고, 그리하여 안정성을 되찾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파스칼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 세계 안에, 인간의 지성까지를 포함해서 어느 곳에서도 세계를 안정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사물을 질서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고정점(le point fixe)은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은 질서를 지켜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파스칼의 기하학이 보여주고 있는 질서는 부유하는 질서, 즉 혼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안정은 오직 신을 통해서만,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독단적 사유 이미지의 근대적 유형의 전형적 예로서 스피노자와 대립시키고 있는 데카르트에게서 사정은 사뭇 달라진다. 그에게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정성을 위한 받침목, 고정점을 찾는 것이며 그리하여 ‘울타리’(circonférence ou clôture)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파스칼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 또한 신의 전능함을 긍정하고, 신의 본질에 대한 합리적 인식 가능성을 배제한다. 요컨대, 신이 왜 이 세계를 이런 모습으로 창조하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탐구는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연 사물들 그 자체는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불투명하지만, 신이 우리에게 준 지성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들의 양태, 즉 운동에 대한 과학, 즉 자연학을 확립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물체를 하나의 동일한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체의 공통적 속성으로서의 연장(extensio)이다. 데카르트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 환원이며, 그것의 형이상학적 의미이다. 이 문제는 직접적으로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스피노자와 관련하여 데카르트를 다룰 때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점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에 대하여 들뢰즈가 제시하는 논변을 파악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3. 데카르트에게서 울타리(clôture)로서의 속성(attributum)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들󰡕에 의하면, 연장은 물질 실체의 주요 속성으로서 “그것의 본성과 본질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실체는 다양한 성질들(proprietes)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운동, 색, 소리, 냄새, 촉감 등을 지닌다. 그러나 이 모든 성질은 실체의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는 이 변화하는 성질을 속성과 구별하여 양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반면에 속성은 실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변화하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요컨대, 속성은 실체 자체는 아니지만 실체에 의존해 있는 것으로서 항구적인 것이다. 연장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형이상학적 논제는 자연학적 설명에 의해서 재확립된다. 󰡔철학의 원리들󰡕의 2부에서 데카르트는 이완(raréfaction)과 응축(condensation)은 단지 형상의 변화만을 가져올 뿐이며, 연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 그런데 이 논증은 이미 중세에 옥캄(Ockham)을 비롯한 유명론자들에 의해서 제시된 바 있는 것이다. 옥캄에게 데카르트가 연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상응하는 개념은 양(quantitas)이다. 옥캄의 핵심적인 주장은 양을 독립적 사물로 물체화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완이나 응축에 의해서 실체가 새로운 어떤 것을 획득한다는 의견을 반박한다. 즉 그것은 양의 증가나 감소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물체의 거리 사이의 변화에 다름 아닐 뿐이다. 그 거리는 변화할 수 있지만(이완이나 응축) 사물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양이 지시하는 것은 바로 특정 양태 하에서 이해된 사물의 항구성, 즉 부분 사이에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파악되는 한에서의 사물 그 자체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물체가 ‘부분이 서로 거리를 가지고 있음’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는 한에서, 물체는 곧 ‘연장되어 있음’과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는 양이라는 개념을 연장 개념으로 전화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옥캄의 양, 데카르트의 연장은 실체에 속하는 것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연장 그것은 항구성(la constance)을 표상한다. 옥캄에게 양은 사물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데카르트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물체는 연장 속성과 오직 사유에 의해서만 구별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연장이 물체와 같은 것이고 오직 사유에 의해서만 구별된다면, 연장은 사유 속에서 파악된 물체라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연장은 사유가 물체를 파악하는 형식이 된다. 물체는 사유에 의해서 연장으로서 파악되는 한에서만 인식 가능한 것이 된다. 따라서 연장은 인식 가능성의 궁극적 토대이다. 데카르트의 자연학이 운동과 정지의 관계, 즉 운동의 법칙들이라면, 운동은 바로 연장에 의존해 있다. 운동은 연장 없이는 사유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불변하는 자연법칙의 존재는 자연 전체의 관점에서의 운동량의 불변이다. 그런데 운동량의 보존을 보장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연장된 물질의 항구성이다. 따라서 자연학의 가능성은 결국, 우리가 데카르트를 논하기 시작하면서 주장했던 바와 같이, 물질의 연장에로의 환원에 있는 것이다. 연장, 연장의 항구성, 그리고 그에 따른 운동량의 보존, 이것들은 앞에서 우리가 말했던 일종의 울타리(clôture) 만들기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울타리는 유한한, 따라서 무한을 끌어안을 수 없는 인간지성이 세계를 안정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방식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장은 '무한한 것'(infinitum)이 아니라 '무규정적인 것'(indefinitum)으로, 즉 유한한 인간지성에 표상되는 한에서의 무한으로 규정된다. 데카르트에게 자연법칙의 불변성은 신의 본성의 불변성의 표현이며, 그것에 의해 보장된다. 따라서 우리가 데카르트에게서 안정성을 위한 받침대는 물질의 연장에로의 환원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환원이 일어나는 우리의 지성에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더욱 정확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실체와 속성 사이에는 이성적 구별(distinctio rationis)이 존재한다고 데카르트가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실체와 속성은 사유에 의해서만 구별될 뿐 실제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경우, 속성은 실체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속성의 실체성을 긍정하게 된다. 이것이 갖는 실천적인 의미는 실체는 본질적 속성의 인식으로 온전하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해는 궁극적으로는 데카르트 철학을 환원적 합리주의로 파악하게 된다. 즉 우리의 이성이 발견한 자연 법칙으로 이 세계는 어떤 그림자도 남김없이 인식될 수 있음을 긍정하게 된다. 반대로 우리는 이성적 구별은, 그것이 사유에 의한 구별이기는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실체는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비록 오직 지성에 의해서만 이 둘이 구별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구별은 단순한 지성의 사실만인 것은 아니다. 그 구별이 존재 자체에 기초해 있는 한,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실제적 구별이기도 하다. 데카르트가 "실체를 규정하는 속성 외에도 실체 자체를 사유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속성이 실체와는 구별된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신은 사유하는 사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의 본질적 속성인] 사유 이상의 것이다". 이렇게 실체가 속성 이상의 것이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는 그 본질적 속성과 구별되는 어떤 것, 즉 속성에 의해서 이해될 수 없는 어떤 것, 속성 없이 사유될 수 있는 존재,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날 것의 존재,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이성이 아닌 어떤 직관을 요청하는 존재에 대한 긍정을 함축하는가? 이것을 긍정할 경우, 우리는 데카르트주의를 신비적 비합리주의와 동일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 후자의 입장 또한 지지되기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데카르트는 분명하게 속성은 실체와 같은 것이며, 속성에 독립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는 오직 속성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실체에 대한 비합리적 접근, 즉 신비주의는 데카르트에게서 차단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데카르트는 실체는 속성 이상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실체는 그 본질적 속성으로 고려되는 한에서 우리에게 인식된다. 그런데 이 인식은 실체 자체의 인식과는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실체는 속성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속성 이상의 것”, 인간 지성이 속성들의 인식을 통해서는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서 우리는 데카르트가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목적인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자연에서 목적인을 배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목적인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였고, 이 세계는 신이 그것을 창조할 때 설립한(instituer) 영원하고 필연적인 법칙을 따른다. 이 법칙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사물들이 그러한 법칙을 따르는지, 무슨 목적으로, 혹은 어떤 이유로 신은 이 세계를 그러한 방식으로 창조하였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근원적인 불투명성의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불가능성을, 창조된 실체의 차원에서, 실체 자체의 속성으로의 완전한 환원 불가능성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곧 바로 우리를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두 번째 특징으로 인도한다. 속성을 통한 실체의 인식이 실체 자체에 대한 인식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데카르트에서 신의 무한성과 우리 지성의 유한성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였다. 무한한 신과 유한한 창조물인 우리는 공통의 존재론적 토대를 갖고 있지 않다. 두 존재는 일의적으로 말해질 수 없으며 단지 유비적으로만 말해질 수 있다. 결국, 속성의 실체성 혹은 실체-속성의 동일성에 대한 데카르트적 회의는 존재의 다의성(l'équivocité)으로부터 연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의성 자체는 신의 초월성(transcendance)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원인으로서의 신이 그 결과인 창조물 외부에 존재하는 한, 존재론적으로 그 결과에 앞서는 원인은 결과를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지만, 결과는 원인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원인에 대한 결과의 외재성, 혹은 결과에 대한 원인의 초월성은 인과적 관계에 있는 두 존재의 근원적 이질성을 정초한다. 이렇게 인식가능성의 원리로서의 원인이 그 결과에 내재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인식의 정당성은 외부로부터 보증되어야 한다. 데카르트에게서 명석, 판명함이 진리의 징표(signe)가 될 수 있는 것이 신의 진실성(la véracité divine)에 의해서 보증되기 때문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외부로부터의 보증이라는 논제는, 들뢰즈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계시(la révélation)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신이 선지자들에게 스스로의 뜻을 계시할 때, 선지자들은 그 계시의 내용이 신의 뜻임을 보증할 수 있는 기호를 요구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궁극적 토대로서의 신이, 그 외재성과 초월성에 의하여,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불투명한 것인 한에서, 그의 표현 즉 계시 자체는 이미 기호 혹은 코드이며, 따라서 그 독해의 확실성을 위해서는 또 다시 외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또 다른 기호의 요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호를 통한 사유가 이렇게 확실성의 보증으로서 외부의 개입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는 한, 그것은 우리를 자유가 아니라 복종으로 이끄는 사유이다. 데카르트주의는 근대 형이상학이 새롭게 부딪쳐야 했던 문제, 즉 어떻게 무한을 사유할 것인가(comment penser l'infini?)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그는 우리의 지성은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소극적으로만(négativement), 즉 유한한 것(le fini)의 부정(in-fini)으로서만 사유할 수 있다. 따라서 무한은 정확히 무규정(l'indefini)으로 불려야만 한다. 무한을 사유로부터 배제하는 것, 그것은 유한 안에 있는 무한(l'infini dans le fini)을 배제하는 것이며, 사유의 울타리를 만드는 사유절차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인간의 '신중한 지혜'(cautela)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데카르트적 신중함은, 들뢰즈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독단적 사유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산 혹은 창조 자체의 뿌리를 이 세계로부터 거세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속성을, 비록 실체와 분리된(séparé) 것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분리 가능한(séparable) 것으로 이해할 때, 즉 속성을 “생산하는 능동적 능력”과 분리할 때, 그는 자연 속에서 생산 자체를 볼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연장 개념을 비판한다. “데카르트가 사유하고 있는 바의 연장, 즉 정지하고 있는 덩어리로 간주되는 연장으로부터는 사실 물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말한 바와 같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4. 무한에 대한 사유와 내재성의 원리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근본적으로 갈라서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한에 대한 긍정적 사유를 자신의 철학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들뢰즈는 이것을 아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는 무한에 대한 사유를 자신의 철학, 나아가 철학 일반의 과제로 삼는다. "사유의 이미지는 사유가 그 권리에 의해 요구할 수 있는 것만을 간직한다. 사유는 단지 무한에까지 이를 수 있는 운동만을 요구한다. 사유가 권리에 의해 요구하는 것, 그것이 선택하는 것, 그것은 무한한 운동 즉 무한의 운동이다. 사유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운동이다". 요컨대 내재성의 평면으로 규정되는 사유의 이미지와 독단적 사유 이미지를 구별하는 것은 무한을 혹은 무한의 운동을 사유하는가 혹은 그것을 사유로부터 배제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대립시킬 때, 계시와 표현, 존재의 다의성과 일의성을 대립시킬 때,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차이였다. 스피노자는 무한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즉 유한의 부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사유방식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무한(infinitum)이라는 단어는 유한(finitum)의 부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무한은 이차적으로, 즉 먼저 주어진 유한과 관련해서만 사유된다. 그러나 존재론적 측면에서는 반대로 일차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무한이고 이차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유한이다. 사유에서의 이러한 전도는 왜 일어나는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가 유한한 것들을 무한보다 "훨씬 더 쉬운 것"(multo facilius)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무한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 즉 무규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중한 지혜”의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것은 용이함에의 굴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들뢰즈는, 데카르트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혼동할 때, 라이프키츠가 그의 ‘섣부름’(la rapidité)을 비판했다면, 스피노자는 그에게서의 ‘용이함’(la facilité)을 비판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절대적인 것은 우리에게 가장 쉽게 지각되는 것이 아니다. 쉽게 사유하기, 그것은 우리 사유의 일상적 경향을 구성하지만, 지성에 고유한 사유방식이 아니라 상상적 사유방식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사실의 차원의 문제(quid facti)와 권리 차원의 문제(quid juris)를 구별할 것을 주장하면서 강조한다. 사유의 본질은 두뇌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les accidents)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그 권리와 역량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가장 쉬운 것을 출발점으로, 즉 절대적인 것으로 놓는 이유는, 우리의 지성은 자연의 발생 질서에 따라 사유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사유는 모든 사물의 원인인 신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무한한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없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우리로부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에게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바로 이러한 절차 때문에 우리가 획득한 진리의 확실성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틀로 설정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과 창조물, 무한과 유한을 근원적으로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한, 신의 초월성을 긍정하는 한, 데카르트의 결론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서 데카르트주의에 대한 비판은 초월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스피노자에게서 실체, 속성, 양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에게서 찾아내고 있는 표현 개념은 바로 스피노자가 이 세 개념을 사유하고 있는 방식으로서 제시된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이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고, 그것에 따르는 문제는 무엇이고, 들뢰즈가 제안하고 있는 해결책은 어떤 것이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논의하는 것은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하자. 우리가 이 글에서 설정하고 있는 문제, 어떻게 스피노자는 무한의 사유를 가능한 것으로 설정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만을 언급하도록 하자. 주지하다시피 󰡔윤리학󰡕1부에서 신과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는 속성을 지성이 실체에 대하여 파악할 때 그것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한다”(정의 4). “나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무한한 수의 속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때 각 속성은 실체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한다”(정의 6). 요컨대,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그것을 표현한다. 들뢰즈가 정확히 말하고 있듯이, 그리고 많은 스피노자 주석가가 동의하고 있듯이, 여기에서 속성은 지성의 형식, 즉 지성이 실체를 파악할 때 외부로부터 부여하는 형식이 아니다. 따라서 속성(attribut)을 실체에 ‘귀속된’ 것(ce qui est attribué)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속성은 오히려 '귀속시키는 것'(attributeur)이다. 그것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constituens) 것으로서 간주되는 한에서, 들뢰즈의 표현을 따르자면, 진정한 ‘동사’(verbes)이다.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속성이 그것을 구성하는 한에서이다. 그렇다면 실체와 무수히 많은 속성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들뢰즈는 의미론(la théorie du sens)이 스피노자의 속성 개념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적합한 이론틀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의미론인가? 신의 본질은 속성들 속에서 무수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본질에 대한 적합한 표현을 우리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진리는 하나뿐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속성들은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신의 본질을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다양한 표현이 하나인 신의 본질을 모두 적합하게 표현하게 되는가? 달리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모두 본질적 표현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신은 특정하게 결정된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특정한 의지도, 체계도 아니다. 그렇게 이해되는 한에서, 그것의 본질은 규정성을 갖게 되고, 그것에 대한 적합한 표현은 하나 이상일 수가 없다. 따라서 오히려 신은 모든 결정된 것들의 토대, 그러나 자신은 토대 혹은 원리를 갖고 있지 않은 토대이다. 그것은 "토대 없는 토대"(le fond sans fond), 분절되지 않은 "목소리"(la Voix)와 같다. 따라서 그것의 본질은 오직 그것이 무수히 많은 서로 다른 것들이 될 수 있다(pouvoir devenir)는 사실에만 존재한다. 들뢰즈적인 표현을 따르자면, 그것은 차이화하는 역량(la puissance de différentier), 즉 차이(la Différence) 그 자체이다. 둘째로, 이렇게 신의 본질을 역량 그 자체로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 신의 본질의 다양한, 그러나 모두 본질적인 표현들이다. 왜냐하면 속성들은 본질로서의 신의 역량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한, 그 자체로 역량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성을 동사로, 능동으로, 능동적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미 데카르트에게서 문제가 되었던 외재적 관점의 배제를 함축한다. 물론, 스피노자도 앞에서 인용한 정의에서 속성을 “지성이……파악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게서 지성의 존재론적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두 철학자 모두 인간지성이 신에 의해서 주어지고 생산되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이 함축하는 것은, 지성이 파악한 것은 존재 속에서 그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차이는 지성이 파악한 것이 데카르트에게는 오직 지성의 사실일 뿐인 반면에, 스피노자에게서는 존재의 사실이기도 하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사실을 정초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데카르트에게서 신은 초월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창조물을 인식하고자 할 때, 인간지성은 보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인간 지성과 신의 지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스피노자에게서는 달리 진행된다. 먼저 󰡔윤리학󰡕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개별 사물들(res particulares)은 신의 속성의 변용, 달리 말하면 신의 속성이 특정하고 결정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에 다름 아니다”. 즉, 속성이 신의 본질을 표현한다면, 양태, 즉 유한 사물은 그 속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속성은 신과 유한 사물의 공통의 형식을 구성한다. 이렇게 속성이,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함축하고 있는 양태에 대해서 말해지는 한, 모든 존재는 일의적인 의미로 말해지게 된다. 이로부터 존재의 일의성(l'univocité de l'être) 논제가 확립된다. 다시 말하면, 신과 그 생산의 결과인 사물은 서로 이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의 한 구절, 스피노자를 결정적으로 그 동시대인과 구별시켰던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신의 모든 사물의 타동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 내재적 원인이란, 그 결과가 원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신이 내재적 원인이라 함은, 신이 생산한 모든 사물은 신의 내부에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물은 결과로서 그 원인은 신에 속한다. 이렇게 사물들이 신에 속해 있는 한, 신이 사물과 존재론적으로 구별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일의성의 논제는 내재성의 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절대적 내재주의가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생산된 사물이 신에 귀속해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신은 그 사물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스피노자는 양태들은 신 없이는 사유될 수 없고 존재할 수 없지만, 신은 양태들 없이도 사유되고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의 질서와 사유의 질서, 즉 무엇이 일차적이고 절대적이며, 무엇이 이차적이고 상대적인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일 뿐, 신이 그 양태들 없이도 유의미하게 혹은 실제적으로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피노자가 주장하고 있듯이, 신의 자기구성은 신의 유한 사물의 생산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면, 신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물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요컨대, 각각의 사물은 신 안에서 신의 역량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들뢰즈가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스피노자의 유일 실체 즉 신에 다름 아니다. 신은 존재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평(l'horizon)으로서 무한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우리는 그 무한의 운동의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이미’(déjà) 그 운동 안에서, 그 지평 안에서 그 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지성은 신의 지성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즉 우리의 지성이 획득한 참된 인식은 곧 바로 신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인간 지성은 어떤 또 다른 보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데카르트가 무한에 대한 사유를 배제한 이유가, 그리고 인식의 보증에 대한 요구를 자신의 주요한 철학적 문제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신의 초월성 논제에 있었다면, 이제 거꾸로 스피노자의 내재성의 원리는 존재의 일의성, 보증 이론의 배제를 함축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무한에 대한 사유를 정초하는 유일한 철학적 원리가 된다. 데카르트가 한 것처럼, 우리가 유한으로부터 무한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오직 ‘울타리’를 만듦으로써만, 그것을 사유로부터 배제함으로써만, 즉 그것을 무규정적인 것으로서 간주함으로써만 무한을 사유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내재성의 원리를 통해 우리가 이미 무한의 운동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우리는 그 운동의 본성에 따라, 사물의 질서에 따라, 즉 무한으로부터 유한을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군주’로 부를 때, 그것은 바로 무한의 사유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철학적 원리로서의 내재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5. 결론을 대신하여 우리는 앞에서 들뢰즈의 스피노자 읽기, 혹은 그의 스피노자-되기를 ‘무한의 사유’라는 틀에서 검토하였다. 우리는, 스피노자의 반데카르트주의 요체이면서 동시에 그의 철학의 구성에 있어서 스피노자 스스로가 제기했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어떻게 무한을 긍정적으로 사유할 것인가’의 문제였으며, 들뢰즈가 독단적 사유 이미지와 내재성의 평면으로 규정되는 사유 이미지를 대립시킬 때 문제가 되었던 것 또한 바로 이 무한에 대한 사유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스피노자와 들뢰즈는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관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여기에서 밝힌 것은 단지, 두 철학자를 이끌었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의 해결을 위한 유일하고 필요한 전제는 내재성의 원리라는 사실뿐이다. 이제 문제는 무한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두 철학자에게 무한의 모습은 어떻게 개념화되는가? 들뢰즈는 자신의 저작 곳곳에서 ‘무한의 속도’, ‘주름’, ‘형상의 해체 혹은 무너짐’, ‘과잉’, ‘강도’, ‘괴물’ ‘프랙탈’, ‘카오스모스’ 등의 표현으로 무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스피노자에 대한 ‘미끌어트림’(le glissement)이 존재한다. 그것은 ‘스피노자-니체’의 동일성, ‘스피노자-베르그손’의 동일성, ‘스피노자-라이프니츠’의 동일성 등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이 동일성의 형식들을 스피노자 철학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출처] 들뢰즈와 스피노자: 무한의 사유_박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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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1.16

들뢰즈와 스피노자: 무한의 사유

박기순

들뢰즈의 철학에서 스피노자가 중요한 이론적 준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출간한 두 권의 스피노자 연구서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저작들 곳곳에서도 스피노자를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철학자들의 군주", "철학자들의 그리스도",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철학자다운 철학자, 말하자면 가장 순수한 철학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비철학자들에게 말을 걸고, 가장 많이 강렬한 비철학적 이해를 요청하는 철학자”, “나의 가슴 안에 있는 철학자”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들뢰즈가 스피노자 철학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본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스피노자 철학의 주석가로서의 들뢰즈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나 󰡔스피노자. 실천철학󰡕에서 들뢰즈는 프랑스의 엄격한 철학사적 연구 전통에 충실한 주석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에게 주석(le commentaire)은, 적어도 들뢰즈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주석은 우리가 통속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주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사적 실천으로 이해되는 주석은 연구 대상으로서의 한 철학체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즉 한 철학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ce qu'il a voulu dire)를 그의 텍스트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주석의 제일 덕목인 정확함(la justesse)은 대상과 해석 사이의 일치를 전제한다. 즉 해석은 가능한 한에서, 주어진 텍스트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정확하게 한 철학자의 사상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릇된 해석(l'interprétation fausse)과 올바른 해석(l'interprétation vraie)을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주석은 텍스트의 진리(la vérité)를 전제한다. 한 철학체계는 이미 완결된 구조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가능한 한에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때 주석적 이해는 이미 주어져 있는 전통적 개념의 렌즈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한에서 환원적(réductive)이다.

그러나 들뢰즈에게 주석은, 그의 용어로 말하자면, 한 철학자와의 만남(la rencontre)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미의 문제이다. 그에게 한 철학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 그것은 이미 결정된 채로 주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남을 통해서 발생하는 어떤 것, 들뢰즈가 의미(le sens)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이 의미는 주어진 텍스트 혹은 사물에 부여하는 외부에서의 한 관점을 뜻하지 않는다. 의미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 자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물 자체의 표현들이다. 요컨대 텍스트-사물은 무한히 많은 의미를 잠재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l'une)가 아니라 다수(le multiple)이며, 있지 않고 발생한다(il n'est pas, mais il devient).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들뢰즈에게 스피노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스피노자는 한 철학자가 아니라 여럿의 철학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무한한 철학자-되기”(Spinoza, le devenir-philosophe infini)이다. 이런 의미에서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을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환경(un milieu), 다양한 ‘스피노자-되기’가 일어나는 환경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에 대한 독해는 스피노자라는 환경 속에 들어가는 것에 다름 아니며, "스피노자를 그 환경을 통해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피노자와 우리의 만남, 즉 “스피노자와 우리”는 “스피노자라는 환경 속에 있는 우리”를 의미한다.

이렇게 스피노자가 하나의 환경이라면,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만남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스피노자이다. 들뢰즈의 스피노자는 그 수많은 스피노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 스피노자는 어떤 의미에서 ‘들뢰즈 안에 있는 스피노자’(Spinoza dans Deleuze) 즉 ‘들뢰즈와의 만남을 통해서 발생하는 스피노자’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스피노자 안에 있는 들뢰즈는 결국 들뢰즈 안에 있는 스피노자와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볼 때, 들뢰즈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철학사가가 아니다. 따라서 들뢰즈의 독해를 그 엄밀성과 정확성의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은 그에게는 부적절한 대우가 될 것이다. 즉 들뢰즈가 스스로를 철학사가로서, 전통적인 의미의 주석가로서 간주하지 않는 곳에서, 그를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들뢰즈 본인이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는 외재적 관점, 판관의 관점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 자신이 실천한 고유한 독해방식에 관계없이, 그의 독해가 하나의 주석으로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그러한 한에서, 그의 스피노자 독해는 또 다른 측면에서 엄격한 주석의 잣대로 검토되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주석에 대한 들뢰즈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고, 따라서 그의 사상이나 철학자들에 대한 해석을 외재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사상을 그 고유한 내적 논리에 따라 즉 내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선행적으로 요청되는 일이다. 스피노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도록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산적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에서 우리는 내재적 방식으로 즉 들뢰즈 자신이 스피노자와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방식에 충실하게 그의 스피노자 독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들뢰즈의 스피노자-되기(le devenir-Spinoza)는 곧바로 들뢰즈의 들뢰즈-되기(le devenir-Deleuze)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들뢰즈에게는 그의 ‘니체-되기’, ‘베르그손-되기’, ‘칸트-되기’, ‘푸르스트-되기’, ‘아르또-되기’ 등의 수많은 ‘-되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스피노자-되기’는 들뢰즈 철학을 구성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 점에서 그것은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들뢰즈의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들뢰즈 철학의 스피노자주의적 표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에게서 나타나는 개념에 부여하고 있는 독특한 운동, 즉 들뢰즈적 운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이 글에서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스피노자를 데카르트에 대립시키면서 드러내고 있는 스피노자 사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근대라고 하는 역사적 시기가 새롭게 만나고 있었던 문제가 무엇이었고, 그것들을 사유하기 위한 두 철학자의 개념적 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 스피노자적 계기가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철학적 환경을 구성하게 되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2. 무한의 문제와 안정성의 형이상학

의심의 여지없이 들뢰즈의 스피노자 해석을 이끌고 있는 것은 표현 개념이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에서 발견한 이 개념은 전통적인 철학의 한 문제, 즉 하나와 여럿(l'Un et le Multiple)의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 이 문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하여 중세 신학적 전통을 거쳐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형이상학의 역사를 지배하였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였다. 플라톤에게서는 이데아와 그것을 분유하고 있는 사물들의 관계의 문제로, 중세에는 신에게 부여된 신의 명칭들(les noms divins)의 문제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차이의 문제, 혹은 하나 없는 다양성 자체의 문제로, 그것은 다양한 문제틀과 접근방식으로 논의되고 정의되어 왔다. 들뢰즈는 이 문제의 역사에서 스피노자적 계기가 갖는 중요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차이의 철학'의 한 구성요소로 삼는다.

스피노자의 철학적 표현주의는, 들뢰즈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과의 비판적 대결 속에서 형성된다. 들뢰즈는 17세기 두 철학자의 이 대립 속에서 철학적 사유의 전형적인 두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각각 들뢰즈가 "독단적 사유 이미지"(l'image dogmatique de la pensée), 사유 이미지로서의 "내재성의 평면"(le plan d'immanence)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독단적 사유 이미지는 ‘고정성의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de la solidité)을 전제한다. 그것은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 안정적인 것을 상정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를 분명한 형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혹은 분명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즉 유한한 것), 다른 것(타자)과 섞이지 않아서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사유는 이렇게 이미 완벽하고 고정된 형태로 주어져 있는 것(le présenté)을 다시 관념의 형태로 드러내는 것(re-présenter)에 있다. 따라서 재현의 대상에서 무한은 제외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대 희랍인들에게 무한(apeiron)은 현실적인 것, 가지적인 것의 영역에서 제외된다. 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잠재적으로만(potentia) 혹은 감각적인 것들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무한을 현실적으로(actu)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근대에 이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지는가? 물론 달라진다. 그러나 들뢰즈가 보기에 본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대립시키고 있는 데카르트에게서는 적어도 그러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근대 철학자들은 이 독단적 사유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스피노자가 예외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세계 안에 무한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그 세계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코이레가 지적하고 있듯이 그것은 코스모스(Cosmos) 즉 경계가 분명한 것들이 서로 구분되면서 동시에 전체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의 파괴이다. 무한의 세계는 중심이 부재한 세계, 근원적인 불투명성(l'opacité)의 세계이다. 그 누구보다도 파스칼(B. Pascal)은 이점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신의 무한성, 그의 전능함에 대한 긍정은 코스모스의 파괴 즉 조각난 세계, 표류하는 세계, 중심이 없는 세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곳에 중심이 있고 울타리가 없는 세계의 긍정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인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부재하는 중심을 찾고, 그리하여 안정성을 되찾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파스칼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 세계 안에, 인간의 지성까지를 포함해서 어느 곳에서도 세계를 안정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사물을 질서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고정점(le point fixe)은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은 질서를 지켜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파스칼의 기하학이 보여주고 있는 질서는 부유하는 질서, 즉 혼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안정은 오직 신을 통해서만,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독단적 사유 이미지의 근대적 유형의 전형적 예로서 스피노자와 대립시키고 있는 데카르트에게서 사정은 사뭇 달라진다. 그에게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정성을 위한 받침목, 고정점을 찾는 것이며 그리하여 ‘울타리’(circonférence ou clôture)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파스칼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 또한 신의 전능함을 긍정하고, 신의 본질에 대한 합리적 인식 가능성을 배제한다. 요컨대, 신이 왜 이 세계를 이런 모습으로 창조하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탐구는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연 사물들 그 자체는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불투명하지만, 신이 우리에게 준 지성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들의 양태, 즉 운동에 대한 과학, 즉 자연학을 확립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물체를 하나의 동일한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체의 공통적 속성으로서의 연장(extensio)이다. 데카르트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 환원이며, 그것의 형이상학적 의미이다. 이 문제는 직접적으로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스피노자와 관련하여 데카르트를 다룰 때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점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에 대하여 들뢰즈가 제시하는 논변을 파악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3. 데카르트에게서 울타리(clôture)로서의 속성(attributum)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들󰡕에 의하면, 연장은 물질 실체의 주요 속성으로서 “그것의 본성과 본질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실체는 다양한 성질들(proprietes)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운동, 색, 소리, 냄새, 촉감 등을 지닌다. 그러나 이 모든 성질은 실체의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는 이 변화하는 성질을 속성과 구별하여 양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반면에 속성은 실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변화하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요컨대, 속성은 실체 자체는 아니지만 실체에 의존해 있는 것으로서 항구적인 것이다.

연장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형이상학적 논제는 자연학적 설명에 의해서 재확립된다. 󰡔철학의 원리들󰡕의 2부에서 데카르트는 이완(raréfaction)과 응축(condensation)은 단지 형상의 변화만을 가져올 뿐이며, 연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 그런데 이 논증은 이미 중세에 옥캄(Ockham)을 비롯한 유명론자들에 의해서 제시된 바 있는 것이다. 옥캄에게 데카르트가 연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상응하는 개념은 양(quantitas)이다. 옥캄의 핵심적인 주장은 양을 독립적 사물로 물체화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완이나 응축에 의해서 실체가 새로운 어떤 것을 획득한다는 의견을 반박한다. 즉 그것은 양의 증가나 감소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물체의 거리 사이의 변화에 다름 아닐 뿐이다. 그 거리는 변화할 수 있지만(이완이나 응축) 사물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양이 지시하는 것은 바로 특정 양태 하에서 이해된 사물의 항구성, 즉 부분 사이에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파악되는 한에서의 사물 그 자체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물체가 ‘부분이 서로 거리를 가지고 있음’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는 한에서, 물체는 곧 ‘연장되어 있음’과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는 양이라는 개념을 연장 개념으로 전화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옥캄의 양, 데카르트의 연장은 실체에 속하는 것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연장 그것은 항구성(la constance)을 표상한다.

옥캄에게 양은 사물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데카르트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물체는 연장 속성과 오직 사유에 의해서만 구별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연장이 물체와 같은 것이고 오직 사유에 의해서만 구별된다면, 연장은 사유 속에서 파악된 물체라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연장은 사유가 물체를 파악하는 형식이 된다. 물체는 사유에 의해서 연장으로서 파악되는 한에서만 인식 가능한 것이 된다. 따라서 연장은 인식 가능성의 궁극적 토대이다. 데카르트의 자연학이 운동과 정지의 관계, 즉 운동의 법칙들이라면, 운동은 바로 연장에 의존해 있다. 운동은 연장 없이는 사유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불변하는 자연법칙의 존재는 자연 전체의 관점에서의 운동량의 불변이다. 그런데 운동량의 보존을 보장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연장된 물질의 항구성이다. 따라서 자연학의 가능성은 결국, 우리가 데카르트를 논하기 시작하면서 주장했던 바와 같이, 물질의 연장에로의 환원에 있는 것이다.

연장, 연장의 항구성, 그리고 그에 따른 운동량의 보존, 이것들은 앞에서 우리가 말했던 일종의 울타리(clôture) 만들기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울타리는 유한한, 따라서 무한을 끌어안을 수 없는 인간지성이 세계를 안정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방식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장은 '무한한 것'(infinitum)이 아니라 '무규정적인 것'(indefinitum)으로, 즉 유한한 인간지성에 표상되는 한에서의 무한으로 규정된다.

데카르트에게 자연법칙의 불변성은 신의 본성의 불변성의 표현이며, 그것에 의해 보장된다. 따라서 우리가 데카르트에게서 안정성을 위한 받침대는 물질의 연장에로의 환원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환원이 일어나는 우리의 지성에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더욱 정확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실체와 속성 사이에는 이성적 구별(distinctio rationis)이 존재한다고 데카르트가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실체와 속성은 사유에 의해서만 구별될 뿐 실제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경우, 속성은 실체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속성의 실체성을 긍정하게 된다. 이것이 갖는 실천적인 의미는 실체는 본질적 속성의 인식으로 온전하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해는 궁극적으로는 데카르트 철학을 환원적 합리주의로 파악하게 된다. 즉 우리의 이성이 발견한 자연 법칙으로 이 세계는 어떤 그림자도 남김없이 인식될 수 있음을 긍정하게 된다.

반대로 우리는 이성적 구별은, 그것이 사유에 의한 구별이기는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실체는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비록 오직 지성에 의해서만 이 둘이 구별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구별은 단순한 지성의 사실만인 것은 아니다. 그 구별이 존재 자체에 기초해 있는 한,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실제적 구별이기도 하다. 데카르트가 "실체를 규정하는 속성 외에도 실체 자체를 사유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속성이 실체와는 구별된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신은 사유하는 사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의 본질적 속성인] 사유 이상의 것이다".

이렇게 실체가 속성 이상의 것이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는 그 본질적 속성과 구별되는 어떤 것, 즉 속성에 의해서 이해될 수 없는 어떤 것, 속성 없이 사유될 수 있는 존재,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날 것의 존재,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이성이 아닌 어떤 직관을 요청하는 존재에 대한 긍정을 함축하는가? 이것을 긍정할 경우, 우리는 데카르트주의를 신비적 비합리주의와 동일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 후자의 입장 또한 지지되기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데카르트는 분명하게 속성은 실체와 같은 것이며, 속성에 독립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는 오직 속성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실체에 대한 비합리적 접근, 즉 신비주의는 데카르트에게서 차단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데카르트는 실체는 속성 이상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실체는 그 본질적 속성으로 고려되는 한에서 우리에게 인식된다. 그런데 이 인식은 실체 자체의 인식과는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실체는 속성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속성 이상의 것”, 인간 지성이 속성들의 인식을 통해서는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서 우리는 데카르트가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목적인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자연에서 목적인을 배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목적인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였고, 이 세계는 신이 그것을 창조할 때 설립한(instituer) 영원하고 필연적인 법칙을 따른다. 이 법칙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사물들이 그러한 법칙을 따르는지, 무슨 목적으로, 혹은 어떤 이유로 신은 이 세계를 그러한 방식으로 창조하였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근원적인 불투명성의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불가능성을, 창조된 실체의 차원에서, 실체 자체의 속성으로의 완전한 환원 불가능성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곧 바로 우리를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두 번째 특징으로 인도한다. 속성을 통한 실체의 인식이 실체 자체에 대한 인식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데카르트에서 신의 무한성과 우리 지성의 유한성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였다. 무한한 신과 유한한 창조물인 우리는 공통의 존재론적 토대를 갖고 있지 않다. 두 존재는 일의적으로 말해질 수 없으며 단지 유비적으로만 말해질 수 있다. 결국, 속성의 실체성 혹은 실체-속성의 동일성에 대한 데카르트적 회의는 존재의 다의성(l'équivocité)으로부터 연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의성 자체는 신의 초월성(transcendance)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원인으로서의 신이 그 결과인 창조물 외부에 존재하는 한, 존재론적으로 그 결과에 앞서는 원인은 결과를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지만, 결과는 원인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원인에 대한 결과의 외재성, 혹은 결과에 대한 원인의 초월성은 인과적 관계에 있는 두 존재의 근원적 이질성을 정초한다.

이렇게 인식가능성의 원리로서의 원인이 그 결과에 내재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인식의 정당성은 외부로부터 보증되어야 한다. 데카르트에게서 명석, 판명함이 진리의 징표(signe)가 될 수 있는 것이 신의 진실성(la véracité divine)에 의해서 보증되기 때문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외부로부터의 보증이라는 논제는, 들뢰즈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계시(la révélation)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신이 선지자들에게 스스로의 뜻을 계시할 때, 선지자들은 그 계시의 내용이 신의 뜻임을 보증할 수 있는 기호를 요구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궁극적 토대로서의 신이, 그 외재성과 초월성에 의하여,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불투명한 것인 한에서, 그의 표현 즉 계시 자체는 이미 기호 혹은 코드이며, 따라서 그 독해의 확실성을 위해서는 또 다시 외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또 다른 기호의 요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호를 통한 사유가 이렇게 확실성의 보증으로서 외부의 개입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는 한, 그것은 우리를 자유가 아니라 복종으로 이끄는 사유이다.

데카르트주의는 근대 형이상학이 새롭게 부딪쳐야 했던 문제, 즉 어떻게 무한을 사유할 것인가(comment penser l'infini?)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그는 우리의 지성은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소극적으로만(négativement), 즉 유한한 것(le fini)의 부정(in-fini)으로서만 사유할 수 있다. 따라서 무한은 정확히 무규정(l'indefini)으로 불려야만 한다. 무한을 사유로부터 배제하는 것, 그것은 유한 안에 있는 무한(l'infini dans le fini)을 배제하는 것이며, 사유의 울타리를 만드는 사유절차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인간의 '신중한 지혜'(cautela)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데카르트적 신중함은, 들뢰즈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독단적 사유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산 혹은 창조 자체의 뿌리를 이 세계로부터 거세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속성을, 비록 실체와 분리된(séparé) 것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분리 가능한(séparable) 것으로 이해할 때, 즉 속성을 “생산하는 능동적 능력”과 분리할 때, 그는 자연 속에서 생산 자체를 볼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연장 개념을 비판한다. “데카르트가 사유하고 있는 바의 연장, 즉 정지하고 있는 덩어리로 간주되는 연장으로부터는 사실 물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말한 바와 같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4. 무한에 대한 사유와 내재성의 원리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근본적으로 갈라서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한에 대한 긍정적 사유를 자신의 철학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들뢰즈는 이것을 아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는 무한에 대한 사유를 자신의 철학, 나아가 철학 일반의 과제로 삼는다. "사유의 이미지는 사유가 그 권리에 의해 요구할 수 있는 것만을 간직한다. 사유는 단지 무한에까지 이를 수 있는 운동만을 요구한다. 사유가 권리에 의해 요구하는 것, 그것이 선택하는 것, 그것은 무한한 운동 즉 무한의 운동이다. 사유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운동이다". 요컨대 내재성의 평면으로 규정되는 사유의 이미지와 독단적 사유 이미지를 구별하는 것은 무한을 혹은 무한의 운동을 사유하는가 혹은 그것을 사유로부터 배제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대립시킬 때, 계시와 표현, 존재의 다의성과 일의성을 대립시킬 때,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차이였다.

스피노자는 무한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즉 유한의 부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사유방식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무한(infinitum)이라는 단어는 유한(finitum)의 부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무한은 이차적으로, 즉 먼저 주어진 유한과 관련해서만 사유된다. 그러나 존재론적 측면에서는 반대로 일차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무한이고 이차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유한이다. 사유에서의 이러한 전도는 왜 일어나는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가 유한한 것들을 무한보다 "훨씬 더 쉬운 것"(multo facilius)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무한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 즉 무규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신중한 지혜”의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것은 용이함에의 굴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들뢰즈는, 데카르트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혼동할 때, 라이프키츠가 그의 ‘섣부름’(la rapidité)을 비판했다면, 스피노자는 그에게서의 ‘용이함’(la facilité)을 비판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절대적인 것은 우리에게 가장 쉽게 지각되는 것이 아니다. 쉽게 사유하기, 그것은 우리 사유의 일상적 경향을 구성하지만, 지성에 고유한 사유방식이 아니라 상상적 사유방식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사실의 차원의 문제(quid facti)와 권리 차원의 문제(quid juris)를 구별할 것을 주장하면서 강조한다. 사유의 본질은 두뇌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les accidents)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그 권리와 역량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가장 쉬운 것을 출발점으로, 즉 절대적인 것으로 놓는 이유는, 우리의 지성은 자연의 발생 질서에 따라 사유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사유는 모든 사물의 원인인 신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무한한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없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우리로부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에게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바로 이러한 절차 때문에 우리가 획득한 진리의 확실성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틀로 설정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과 창조물, 무한과 유한을 근원적으로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한, 신의 초월성을 긍정하는 한, 데카르트의 결론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서 데카르트주의에 대한 비판은 초월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스피노자에게서 실체, 속성, 양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들뢰즈가 스피노자에게서 찾아내고 있는 표현 개념은 바로 스피노자가 이 세 개념을 사유하고 있는 방식으로서 제시된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이 개념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고, 그것에 따르는 문제는 무엇이고, 들뢰즈가 제안하고 있는 해결책은 어떤 것이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논의하는 것은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하자. 우리가 이 글에서 설정하고 있는 문제, 어떻게 스피노자는 무한의 사유를 가능한 것으로 설정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만을 언급하도록 하자.

주지하다시피 󰡔윤리학󰡕1부에서 신과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는 속성을 지성이 실체에 대하여 파악할 때 그것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한다”(정의 4). “나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무한한 수의 속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때 각 속성은 실체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한다”(정의 6). 요컨대,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그것을 표현한다. 들뢰즈가 정확히 말하고 있듯이, 그리고 많은 스피노자 주석가가 동의하고 있듯이, 여기에서 속성은 지성의 형식, 즉 지성이 실체를 파악할 때 외부로부터 부여하는 형식이 아니다. 따라서 속성(attribut)을 실체에 ‘귀속된’ 것(ce qui est attribué)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속성은 오히려 '귀속시키는 것'(attributeur)이다. 그것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constituens) 것으로서 간주되는 한에서, 들뢰즈의 표현을 따르자면, 진정한 ‘동사’(verbes)이다.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속성이 그것을 구성하는 한에서이다.

그렇다면 실체와 무수히 많은 속성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들뢰즈는 의미론(la théorie du sens)이 스피노자의 속성 개념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적합한 이론틀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의미론인가? 신의 본질은 속성들 속에서 무수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본질에 대한 적합한 표현을 우리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진리는 하나뿐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속성들은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신의 본질을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다양한 표현이 하나인 신의 본질을 모두 적합하게 표현하게 되는가? 달리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모두 본질적 표현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신은 특정하게 결정된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특정한 의지도, 체계도 아니다. 그렇게 이해되는 한에서, 그것의 본질은 규정성을 갖게 되고, 그것에 대한 적합한 표현은 하나 이상일 수가 없다. 따라서 오히려 신은 모든 결정된 것들의 토대, 그러나 자신은 토대 혹은 원리를 갖고 있지 않은 토대이다. 그것은 "토대 없는 토대"(le fond sans fond), 분절되지 않은 "목소리"(la Voix)와 같다. 따라서 그것의 본질은 오직 그것이 무수히 많은 서로 다른 것들이 될 수 있다(pouvoir devenir)는 사실에만 존재한다. 들뢰즈적인 표현을 따르자면, 그것은 차이화하는 역량(la puissance de différentier), 즉 차이(la Différence) 그 자체이다. 둘째로, 이렇게 신의 본질을 역량 그 자체로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 신의 본질의 다양한, 그러나 모두 본질적인 표현들이다. 왜냐하면 속성들은 본질로서의 신의 역량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한, 그 자체로 역량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성을 동사로, 능동으로, 능동적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미 데카르트에게서 문제가 되었던 외재적 관점의 배제를 함축한다. 물론, 스피노자도 앞에서 인용한 정의에서 속성을 “지성이……파악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게서 지성의 존재론적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두 철학자 모두 인간지성이 신에 의해서 주어지고 생산되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이 함축하는 것은, 지성이 파악한 것은 존재 속에서 그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차이는 지성이 파악한 것이 데카르트에게는 오직 지성의 사실일 뿐인 반면에, 스피노자에게서는 존재의 사실이기도 하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사실을 정초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데카르트에게서 신은 초월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창조물을 인식하고자 할 때, 인간지성은 보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인간 지성과 신의 지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스피노자에게서는 달리 진행된다. 먼저 󰡔윤리학󰡕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개별 사물들(res particulares)은 신의 속성의 변용, 달리 말하면 신의 속성이 특정하고 결정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에 다름 아니다”. 즉, 속성이 신의 본질을 표현한다면, 양태, 즉 유한 사물은 그 속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속성은 신과 유한 사물의 공통의 형식을 구성한다. 이렇게 속성이,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함축하고 있는 양태에 대해서 말해지는 한, 모든 존재는 일의적인 의미로 말해지게 된다. 이로부터 존재의 일의성(l'univocité de l'être) 논제가 확립된다. 다시 말하면, 신과 그 생산의 결과인 사물은 서로 이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의 한 구절, 스피노자를 결정적으로 그 동시대인과 구별시켰던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신의 모든 사물의 타동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 내재적 원인이란, 그 결과가 원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신이 내재적 원인이라 함은, 신이 생산한 모든 사물은 신의 내부에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물은 결과로서 그 원인은 신에 속한다. 이렇게 사물들이 신에 속해 있는 한, 신이 사물과 존재론적으로 구별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일의성의 논제는 내재성의 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절대적 내재주의가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생산된 사물이 신에 귀속해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신은 그 사물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스피노자는 양태들은 신 없이는 사유될 수 없고 존재할 수 없지만, 신은 양태들 없이도 사유되고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의 질서와 사유의 질서, 즉 무엇이 일차적이고 절대적이며, 무엇이 이차적이고 상대적인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일 뿐, 신이 그 양태들 없이도 유의미하게 혹은 실제적으로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피노자가 주장하고 있듯이, 신의 자기구성은 신의 유한 사물의 생산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면, 신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물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요컨대, 각각의 사물은 신 안에서 신의 역량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들뢰즈가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스피노자의 유일 실체 즉 신에 다름 아니다. 신은 존재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평(l'horizon)으로서 무한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우리는 그 무한의 운동의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이미’(déjà) 그 운동 안에서, 그 지평 안에서 그 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지성은 신의 지성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즉 우리의 지성이 획득한 참된 인식은 곧 바로 신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인간 지성은 어떤 또 다른 보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데카르트가 무한에 대한 사유를 배제한 이유가, 그리고 인식의 보증에 대한 요구를 자신의 주요한 철학적 문제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신의 초월성 논제에 있었다면, 이제 거꾸로 스피노자의 내재성의 원리는 존재의 일의성, 보증 이론의 배제를 함축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무한에 대한 사유를 정초하는 유일한 철학적 원리가 된다. 데카르트가 한 것처럼, 우리가 유한으로부터 무한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오직 ‘울타리’를 만듦으로써만, 그것을 사유로부터 배제함으로써만, 즉 그것을 무규정적인 것으로서 간주함으로써만 무한을 사유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내재성의 원리를 통해 우리가 이미 무한의 운동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우리는 그 운동의 본성에 따라, 사물의 질서에 따라, 즉 무한으로부터 유한을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군주’로 부를 때, 그것은 바로 무한의 사유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철학적 원리로서의 내재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5. 결론을 대신하여

우리는 앞에서 들뢰즈의 스피노자 읽기, 혹은 그의 스피노자-되기를 ‘무한의 사유’라는 틀에서 검토하였다. 우리는, 스피노자의 반데카르트주의 요체이면서 동시에 그의 철학의 구성에 있어서 스피노자 스스로가 제기했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어떻게 무한을 긍정적으로 사유할 것인가’의 문제였으며, 들뢰즈가 독단적 사유 이미지와 내재성의 평면으로 규정되는 사유 이미지를 대립시킬 때 문제가 되었던 것 또한 바로 이 무한에 대한 사유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스피노자와 들뢰즈는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관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여기에서 밝힌 것은 단지, 두 철학자를 이끌었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의 해결을 위한 유일하고 필요한 전제는 내재성의 원리라는 사실뿐이다. 이제 문제는 무한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두 철학자에게 무한의 모습은 어떻게 개념화되는가? 들뢰즈는 자신의 저작 곳곳에서 ‘무한의 속도’, ‘주름’, ‘형상의 해체 혹은 무너짐’, ‘과잉’, ‘강도’, ‘괴물’ ‘프랙탈’, ‘카오스모스’ 등의 표현으로 무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스피노자에 대한 ‘미끌어트림’(le glissement)이 존재한다. 그것은 ‘스피노자-니체’의 동일성, ‘스피노자-베르그손’의 동일성, ‘스피노자-라이프니츠’의 동일성 등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이 동일성의 형식들을 스피노자 철학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출처] 들뢰즈와 스피노자: 무한의 사유_박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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