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31

고통과 함께하는 동안 새롭게 다가온

철학적 사유와 삶에 대한 깨달음

“파테이 마토스.” 생소한 말이라 의미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는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한평생 니체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저자가 각별히 좋아한다는, 굴곡진 저자의 인생에 힘이 되어주었다는 그리스의 경구다. 2010년의 어느 날,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논문과 강연 등으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던 저자에게 갑작스레 유방암이라는 큰 고난이 찾아오고, 홀연히 맞닥뜨린 암은 저자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준비하던 논문도, 강연도, 책도 내려놓고 오로지 ‘생’에만 몰두해야 하는 상황. 《파테이 마토스》는 발병 이후 3년 동안 저자가 마주했던 삶의 새로운 국면들과 그러한 것들에 대한 저자의 진솔한 심정, 그리고 깨달음을 차곡차곡 담은 책이다. 죽음과 직접 마주한 공포와, 매일 매순간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 상상할 수도 없는 부작용과 무기력 등 처음 마주하는 극도의 고난 속에서 저자는 과연 지혜를 발견했을까? 발견했다면 그 지혜란 어떤 것일까?

급박하게 정해진 수술 날짜에 저자는 제일 먼저 좌절과 분노,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머릿속을 온통 복잡하게 메웠다고 털어놓는다. 존재론을 수십 년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암 진단을 받고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자책이 이어진다. 거기다 수술 뒤에 오랫동안 지속된 ‘사람을 살리는 것인지 죽이는 것인지 모를’ 혹독한 치료…… 몸과 마음에 모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 저자는 “이건 사는 게 아니야”라며 남편을 붙들고 엉엉 울며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곧 좌절과 혼란스러움으로 뒤섞였던 마음을 추스르고 “그래도, 파테이 마토스!”를 외치며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뎌낸다.

고통으로 시작한 3년이지만 그 속에서 삶, 사랑, 그리고 지혜가 피어났다. 고난을 통해 저자는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가장 힘든 순간이 닥치고 나면 그 뒤에 어김없이 지혜가 찾아오곤 했던 것이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병에 걸린 거냐며 반문한 뒤에야 비로소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배려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러움의 화신’이 된 뒤에야 스스로 그들에게 도와줄 기회를 주지 않았음을 깨달아 사랑을 회복하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통의 순간에 그 순간순간을 반추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니체 철학이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저자는 스스로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진 본보기가 되었다.

‘나 자신이 의사가 되기로 하다’

스스로 전담 주치의가 되어 자신을 치료하고

회복으로 나아가기까지   

“수술하셔야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기점으로 철학자로서 공부에만 파묻혀 살아가던 저자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암 선고. 거기다 한쪽 가슴 전체를 절제해야 한단다. 그것은 저자의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이었다. 저자는 크로스체크를 통해 다행히 부분 절제가 가능하다는 최종 진단을 받아내고, 스스로 자신의 주치의가 되기로 굳게 결심한다. 살기 위해, 다만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저자는 암을 공부하고, 병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했다. 먹는 것 하나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식재료 하나하나 까다롭게 선별하여 직접 요리하고, 매일 아침 산에 오르며 운동도 한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다음날, 머릿속이 캄캄하고 눈이 뿌연 가운데 진행하던 모든 일들을 치료 전에 끝내놓겠다며 미루지 않고 마무리한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치료 방법을 직접 선택하면서. 그뿐이 아니다. 불합리한 치료비 보험 적용 기준을 알게 되자 여러 관계 기관에 전화를 돌려 시정할 것을 촉구하고 병원에 자료 제출을 요청하기도 한다. 과연 철학 공부에 매진하던 학자로서의 자세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오늘을 살기 위한 저자의 삶의 철학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수술 후 집중 치료가 시작되자 방사선 치료와 각종 약물은 예민한 저자의 몸을 이리저리 할퀴고 휘두른다. 밤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온종일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태의 연속이다. 저자는 꿋꿋하게 이겨나간다. 직접 부딪치며 배운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정보를 얻고, 최대한 몸에 좋은 것을 섭취하기 위해 직접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을 조사해 꼼꼼하게 목록을 만든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간다. 《파테이 마토스》에 담긴 저자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힘 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저자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다가온 니체, 하이데거, 가다머의 철학

투병 중에 꽃 피운 철학적 성찰

병에 걸린 철학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해서?’라는 도덕적 판단에 기반을 둔 질문이었다. 저자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토록 큰 시련을 주었냐’며 대상도 분명치 않은 화를 내고 원망을 했다. ‘병은 병일 뿐’인 것을. 그러고 나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된다. 병을 인정하자 갑자기 눈앞에 성큼 다가온 죽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의미를 생각해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진 저자는 ‘나는 나라는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니체는 ‘인간은 인간에게 진정한 벗’이며 ‘나 홀로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무척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것들 중 하나가 투병 중에 달라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다. 사랑에 대한 회의가 찾아와 힘들어하던 저자는 새롭게 병실에서 만난 인연, 강의로 만난 인연 등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고, 소중한 제자들의 사랑과 가족의 따뜻함을 느낀다. 언행일치의 중요성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제자들과 조카 유리, 엄마에 대한 에피소드와 함께.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교감하며 살아간다. 나라는 작품을 함께 공동으로 창조해가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은 오히려 저자를 성장시켰다. 병은 저자에게 진정한 철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암이 오히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철학을 깨우쳐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파테이 마토스! 고통의 끝에는 과연 지혜가 있었다.

지은이 백승영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책임연구원과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이자 한국 니체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미학 대학원과 서강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Interpretation bei Nietzsche. Eine Analyse,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니체, 건강한 삶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기획하다》를 썼고, Nietzsche. Ruttler an hundertjahriger Philosophietradition(독일어 책임번역자이자 공저자),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서양철학과 주제학》, 《마음과 철학》, 《오늘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 《철학, 죽음을 말하다》,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처음 읽는 윤리학》,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의 공저가 있다. 또한 니체전집 한국어판 발간에 편집위원이자 번역자로 참여하여,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유고(1888년 초~1889년 1월 초)》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 외에도 근·현대 철학의 주요 영역인 해석학, 해체주의 및 포스트모던 철학, 니체 철학을 대상으로, 존재론·인식론·도덕론·예술론·종교론 및 법론에 이르는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다수의 철학 논문과 글을 발표했고, 시민을 위한 강연을 통해 철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에 부응하는 길을 찾고 있다. 제24회 열암학술상 및 제2회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