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2.27

돈이란 무엇인가
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 옮김/길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은 더 이상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 정도나마 지멜이 친숙해진 것은 거의 전적으로 김덕영 교수 덕분이다. 지난 10년 넘게 진행된 그의 탁월한 번역과 소개가 없었다면, 지멜은 계속 어느 사회학 개론서의 한구석에 부당하게 유배되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작년에 김 교수가 선보인 <돈의 철학>(길)은 획기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무려 1092쪽에 달하는 분량도 분량이려니와, 난해한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린 번역과 대단히 충실한 역주 및 해제는 고전 저작 번역의 한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회분화론>(1890), <사회학>(1908)과 함께 지멜의 진정한 주저인 <돈의 철학>을 드디어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왜 지멜을 단순히 사회학자가 아니라 독창적인 철학자로서 주목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돈이란 무엇인가>는 지멜이 <돈의 철학>을 출간하기 전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금전욕 등 ‘돈의 심리학’과 돈이 근(현)대의 정신적·사회적 문화를 담지하고 담지되는 과정”(해제)을 논한 책이다. 김 교수는 이번에 ‘돈의 심리학에 대하여’, ‘현대 문화에서의 돈’ 등 7편의 논고를 번역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나중에 <돈의 철학>의 2~6장 속으로 자연스럽게 통합되었다. 누군가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주저 속에 통합된 예비 작업들을 굳이 따로 번역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성급한 우문(愚問)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일곱 편의 예비 작업들이 본 작업의 밑거름이 된 것은 맞지만, 결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편입된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비 작업들은 각각이 독자적이며 완결된 이론적 성과인 것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이들과 <돈의 철학>의 해당 부분을 비교, 검토하여 그 차이와 변화를 세밀하게 밝혀주고 있다. 둘째로 예비 작업과 본 작업 사이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일은 결코 어떤 부차적인 연구과제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그 자체가 섬세하고 포괄적인 관찰과 비판적인 분석을 요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과제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경제학-철학 수고’(1844), ‘정치경제학 비판 개요’(1858), ‘잉여가치론’(1863), ‘노동, 가격, 이윤’(1865) 등의 선행 작업을 반드시 함께 숙고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선규 홍익대 교수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지적대로, 지멜 사유의 근본원리는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매 순간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역동적인 관계와 생성의 존재론이었다. 이 존재론을 바탕으로 지멜은 <돈이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와 문화, 주체와 객체, 개별자와 사회, 표면과 심층 사이를 넘나들면서 돈에 대한 의미심장한 문화철학적 성찰을 선보인다. 이 성찰에 자신을 내맡길 때 독자가 얻게 되는 안목과 통찰은 대단히 크고 심원하다. 그것은 돈의 마법을 푸는 지성의 레시피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왜냐하면 독자가 이 레시피로 자신의 지성을 충분히 단련할 때, 돈과 자본주의에 대한 단편적이며 평면적인 사고에서 빠져나와 이들에 대한 진정한 변증법적 인식의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선규 홍익대  교수